삼나무와 저수지의 완벽한 데칼코마니…여기, 유럽인가요

입력 2021-04-15 17:33   수정 2021-04-16 02:15


코로나19는 언제 끝이 날까요? 알베르 카뮈는 《페스트》에서 전염병이 사라지던 날의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모두들 소리치거나 웃고 있었다. 그들은 저마다 자기 영혼의 불빛을 낮게 줄여놓고 지난 몇 달 동안에 비축되었던 생명감을 마치 그날이 자기들의 남은 날들의 기념일인 양 마음껏 즐기고 있었다.” 우리에게도 숨겨두었던 환희와 기쁨을 남김없이 드러낼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전남 화순은 코로나19가 사라진다면 가장 먼저 가고 싶은 곳입니다. 볼거리가 많아서가 아니라 전염병으로 지친 마음을 위로받을 수 있는 따스한 분위기가 있기 때문입니다. 소박하고 정겨운 사찰부터 수채화 같은 풍경이 일품인 세량제까지, 모든 것이 정겨운 화순으로 이번 주말 여행을 떠나면 어떨까요?
환상적인 봄날의 새벽 풍경, 세량제

화순의 작은 저수지인 세량제는 사진 좀 찍는다는 사람들이 꼭 한 번은 찾는 명소다. 세량제는 1969년 축조된 마을 저수지다. 미국 뉴스 전문채널 CNN이 ‘한국에서 가봐야 할 아름다운 곳 50’으로 아래 논에 물을 대는 저수지를 선정한 것은 사진 한 장의 힘 때문일지도 모른다. 산벚꽃과 삼나무 밑으로 낮게 깔린 새벽 안개가 어우러진 이국적인 모습은 압도적인 인상을 남겼다.

새벽 어스름을 뚫고 세량제에 도착하니 아쉽게도 산벚꽃이 예년보다 일찍 졌지만 삼나무가 고요한 물에 반영된 풍경은 유럽에서 보았던 신비로운 호수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다. 안개는 저수지를 낮게 떠돌고, 마지막 남은 산벚꽃은 꽃잎을 조금씩 내주며 호수를 채색하고 있었다. 많은 사진작가가 풍경에 반해 몰리다 보니 저수지 앞 사진 찍을 만한 장소마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철책을 쳤다. 전염병은 풍경마저 갉아 먹었다.

세량제에 비할 바는 아니지만 소담하면서도 정겨운 화순의 진면목을 보여주는 곳이 연둔리 둔동마을에 있는 숲정이다. 마을 근처 숲이라는 뜻의 순우리말인 숲정이는 전국 여러 곳에 있으나 연둔리 숲정이가 가장 대표적이다. 연둔리 숲정이는 마을 앞 동복천을 따라 남북으로 약 700m에 이르는 제법 긴 산책길이다. 1500년께 마을이 형성되면서 홍수 등으로부터 마을을 보호하고자 조성됐다고 한다. 걷다 보면 거대한 왕버들이 수중보 아래까지 뻗어 있어 낭만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못생기고 울퉁불퉁한 석불 모신 운주사

화순의 또 다른 명소는 사찰이다. 그중 운주사는 화순에서 가장 이름난 사찰이다. 조선 초기까지만 해도 석불과 석탑이 무려 1000기나 있었다는 규모 있는 절집이지만 지금은 석불 93기와 석탑 21기만 남았다. 흔히 사찰의 인상은 대웅전과 부속 암자들이 좌우하지만 운주사는 다양한 형상을 한 석불이 먼저 눈을 사로잡는다. 마치 아이들이 진흙으로 공예를 하다 싫증 나서 툭 던져놓고 간 것 같다. 몸에 비례해서 너무 큰 얼굴, 외계인처럼 긴 팔과 손,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얼굴의 윤곽…. 그런데도 석불을 본 사람들은 왠지 눈시울이 뜨거워진다고 했다. 석굴암의 정교하고 유려한 부처님 모습이 아니라 못생기고 울퉁불퉁한 우리네 보통 백성들의 모습을 닮았기 때문일 것이다.

부처님이라 해서 잘 모셔둔 것도 아니다. 바위에 기대어 앉거나 선 채로 있다. 산신각 옆에 있는 좌불은 참배객이 놓아둔 돌 더미들에 설파하는 모습으로 앉아 있다. 석탑들은 더 기묘하다. 어떤 것은 9층 석탑이고 또 어떤 것은 7층 석탑이다. 일반적인 석탑 모양도 있고 마치 도넛이나 호떡을 연상시키는 것도 있다. 석탑에 새겨진 문양도 제각각이다. 연꽃이나 마름모 x, v 같은 기하학적인 무늬를 새겨놓은 것도 있다. 자유롭고 호방하다.

왜 이곳에 석불과 석탑이 1000기나 있었던 것일까? 운주사 창건 설화에 따르면 신라말 도선국사가 한반도를 배의 형상으로 보고 동쪽엔 산이 많지만 서쪽엔 산이 없어서 이곳에 탑과 불상을 세워 균형을 맞추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보다는 천불과 천탑을 지으면 모든 중생이 행복하게 산다는 미륵의 용화세계를 꿈꾼 당시 백성들의 염원이 만든 집단 창작물이 아니었을까?
정교하기 이를 데 없는 철감선사 부도
운주사에서 10㎞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쌍봉사도 독특하기 이를 데 없다. 단층에 넓게 퍼진 형태가 대웅전의 일반적인 모습이라면 쌍봉사의 대웅전은 좁고 길다. 게다가 3층으로 되어 있다. 쌍봉사 뒤쪽 언덕에 있는 철감선사 부도와 탑비도 별나다. 같은 신라시대에 만든 부도인데 문양은 화려하고 정교하기 이를 데 없다. 운주사의 자유분방한 탑과는 비교도 할 수 없다. 구름 위에 앉아 있는 여덟 마리의 사자가 새겨진 밑돌부터 불교 설화에 나오는 전설의 새 ‘가릉빈가’가 악기를 타는 모습까지 그야말로 환상적인 솜씨다. 탑비는 또 어떤가? 탑비를 받치고 있는 거북이가 마치 금세라도 어슬렁거릴 정도로 생동감 넘친다.

부도와 탑비를 보고 대나무 숲길을 내려오다 초의선사가 자신의 허물을 되돌아보며 지었다는 시비와 마주했다. “외딴 암자는 적막하고 한가하구나 /…바람은 산들산들 난간에서 인다… / 남들이야 이 심사를 알 리 없네 / 싫어하고 의심함 사이 피할 길 없네 / 어찌 미연에 막지를 못했던가.”

우리는 스스로에게 얼마나 솔직했나? 대나무 숲길 사이로 바람이 술렁이며 스쳐 지나갔다.

화순=글·사진 최병일 여행·레저전문기자 skycb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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